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위 계승의 법칙 (문단 편집) ==== [[근친혼]] 계승 ==== 왕위를 다른 가문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 근친혼을 통해 [[외척]]이 들어오지 못 하게 하는 방식이다. 왕위 계승자는 부모 둘 다 왕족이어야 한다. [[고대 이집트]] 왕가는 왕가 안에서 자기들끼리만 근친혼을 거듭하며 계승했다. [[고려]] 초기엔 너무 많은 호족 출신 외척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일부러 근친혼 관계에서 태어난 왕자를 계승 순위 1위에 올리기도 했다. 장점 하나는 확실하다. 이렇게 태어난 후계자는 누구도 태클 걸 수 없는 로열 블러드라 막강한 [[정통성]]을 갖게되며 자연히 [[왕권]]도 강해진다. 그럼에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역시 근친상간에 대한 생물학적 혐오감일 것이다. 사촌혼도 아니고 남매혼을 밥먹듯 했던 [[고대 이집트]]에서도 오직 왕가만이 근친혼을 했으며, 이것도 [[파라오]]를 인간이 아닌 신의 화신으로서 섬겼기에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신화에서 신들의 근친상간은 흔히 나타난다. 하지만 인간의 근친상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죄악시 되지 않았던가. 다음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은 대를 이어갈수록 왕위 계승의 자격이 있는 후손이 줄어든다는 것과 [[골품제]]와 비슷하게 변질하면서 일반적인 방식인 부계상속에서 모계상속으로 전환되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후궁]]을 들여도 왕위 계승자를 얻지 못해서 단절되는 왕가가 생기는 판국에 [[일부일처제]]나 다름없는 왕족과 왕족간의 혼인에서 왕위 계승자가 나올 확률은 더 떨어지니 결국 대를 이어갈수록 왕족의 수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후계 왕족의 수가 더 줄어드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 왕족과 비슷할 정도로 여성 왕족의 위세가 강해지므로 남성 왕족이 없다면 여성 왕족이 여왕으로 즉위하거나 여성 왕족과 왕족이 아닌 남자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왕위에 올리려는 시도가 발생하게 된다. 실제의 사례에서도 [[신라]]의 [[성골]]이 [[진평왕]]을 마지막으로 남성 성골의 대가 끊어져서 [[선덕여왕]]와 [[진덕여왕]]이라는 두명의 [[여왕]]이 연속으로 즉위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며 [[고려]]의 경우에도 [[목종(고려)|목종]]의 후계자로 [[헌애왕후]]와 [[김치양]]이 사통하여 얻은 아들을 김치양이 추대하려다가 [[강조의 정변]]으로 뒤집어지고 [[현종(고려)|현종]]이 즉위한 사례가 존재한다. 하지만 고대 국가에서 여왕이 즉위하면 보통의 경우에는 군사력이 약해지기 십상이라 [[비담의 난]]같은 내부반란이나 [[태종(당)|당나라 태종]]이 643년에 신라의 구원을 요청한 사신에게 자신의 사촌을 보낼 테니 신라의 왕으로 삼으라고 조롱한다거나 [[의자왕]]에게 신라 영토를 심각할 수준으로 빼앗긴다던지 하는 사태가 일어나서 별로 좋지 않은 성과를 보였다. [[요나라]]의 [[예지황후]]처럼 군사 방면에도 재능이 출중한 경우도 있으나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며 예지황후의 경우에도 아들로 [[성종(요)|성종]]이 굳건하게 존재하며 아들을 돕는다는 의미로 [[섭정]]을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경우다. 여성 왕족과 왕족이 아닌 남자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보위에 올리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부른다. 왕가의 성씨가 바뀌는 [[역성혁명]]이나 마찬가지의 사태가 터지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로 인해 왕가의 단절이 많아서 여성 왕족이 타국의 왕족과 결혼해서 대를 이어나가거나 아예 이전 대의 공주와 결혼한 타국의 왕족이 즉위하는 경우가 많은 서양에서도 이런 경우에는 왕가의 성씨가 완전히 변경되는 문제가 터지고 일이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여 [[왕위 계승 전쟁]]이 터지게 된다. 신라에서도 결국 성골이 완전히 단절된 뒤에나 [[태종 무열왕]]이 즉위하여 [[진골]]이 왕위를 계승하는 방법으로 전환되며 고려의 김치양이 자기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시도가 비극으로 끝난게 다 이유가 있던 것이다. 다른 문제점도 많은 편이다. 반복되는 근친혼으로 세대를 거듭할수록 온갖 유전병을 주렁주렁 달게 된다는 것. 그 유명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근친혼이 누적되면서 무능한 후계자들이 줄줄이 태어나게 되었다. 물론 어지간하면 유전병이 발현될 정도로 근친혼을 하는 일조차 극히 드물어서 의외로 잘 나타나지 않은 단점이다.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파라오]]의 계승 이외에는 특정한 이유에 의한 일시적인 사례 정도로만 시도되었으며 파라오의 경우에도 외국으로부터 근친혼을 한다는 식의 비난을 담은 외교문서를 받아보는 등 외부로부터의 평가가 좋지 않았다. 고려도 현종 이후에는 용손'(龍孫)이라는 개념만 유지하고 근친혼으로 낳은 자식만 왕위계승권이 있다는 것은 서서히 폐기하였고 풍습만 간간히 이어지다가 [[충렬왕]]의 제1비인 [[제국대장공주]]부터 근친혼이 소멸하고 용손이라는 개념만 남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